국가유산 정보
소개
이 불상은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에 사명(寺名)을 알 수 없는 옛 절터에 소재하고 있는데 토지소유자 이순선에 의하면 약 50년전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불상의 원위치 역시 알 수 없으나 현재 인근의 암자(봉학사)가 위치한 곳에 묻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불상은 좌대(座臺)와 광배(光背)를 구비한 석조여래좌상으로 암질은 화강암인데 좌대와 불상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나 광배는 상단의 일부가 파손되어 떨어져 있으며 좌대는 하대 하반부가 매몰되어 있는데 각우(各隅)에 복엽팔판(複葉八瓣)의 복련(複蓮)을 조식하고 그 상면에 사분원과 각형(角形)괴임을 2단으로 각출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면에 우주(隅柱)가 있고, 상대석은 하면에 2단의받침을 두고 그 위에는 단엽앙련(單葉仰蓮) 16판을 돌렸는데, 각 판내에는 화문(花紋)을 장식하였다. 불상의 나발(螺髮)은 마멸된 곳이 많고 육계가 크며 두 귀는 긴 편이다. 법의는 옷주름이 선명한 우견편단(右肩偏袒)이고 결가부좌를 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광배는 보주형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별하고 그 간지(間地)에 보상화문을 장식했으며, 주연(周緣)에는 화염문이 있고 후면에는 명문의 흔적이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판독할 수 없다. 이 불상의 조성시기는 통일신라시대 후기로 추정되며 좌대와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고 전체적으로 정교하고 각 부분의 문양의 균등이 잘 잡힌 불상이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투박한 얼굴모습, 신체에 비해 빈약한 팔과 손, 대좌 윗단의 꽃무늬 표현 등의 특징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