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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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지명 |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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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교1동 지명유래 | 교1동 마을은 원뎅이재(元峴)에서 문어발처럼 사방으로 내려간 산줄기에 있는 마을인데 서쪽으로 내려간 줄기는 쟁민골을 지나 죽일로 이어지고, 북쪽으로 내려간 줄기는 메두(강일여자고등학교 부근), 이랠, 가장골, 취연산(율곡중학교의 뒷산으로 경포의 사주산에 해당되는 산)으로 이어져 경포호와 맞닿고, 동쪽으로 내려 준 줄기는 두가닥으로 갈라지면서 한가닥은 상선재(구명주군청 자리), 임영고개를 지나 화부산(강릉명륜고자리)으로 내려갔고, 또 한가닥은 솔올(영동초등학교앞 일대)을 지나 갈매동(강릉상고 뒤 일대)으로 내려가 성두도랑에서 끝나고, 남쪽으로 내려간 줄기는 코풀재(관동중학교앞길)를 이뤘고, 남서쪽으로 내려간 줄기 끝에는 북바위골(북바위가 있는 골로 고속도로옆에 생긴 바위가 있는데, 옛날 하늘로 승천 할려는 용마가 쑥두룩에 와서 쑥을 뜯어 먹고 취해, 발락고개까지 기어오니 숨이 차서 발락발락 거리며 겨우 넘고 코풀재에 와서 코를 풀고 북바위에 와서 북을 치고 죽일에 가서 죽으니 메두에다 메를 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이 있다. 이렇듯 마을에서 으뜸이 되는 원뎅이재가 있는 교 1동에는 여러 고을이 있는바, 그중 솔올은 영동초등학교앞 구교육청이 있는 마을일대로 ‘소나무가 많이 있는 고을’이란 뜻인 솔올은 소나무를 뜻하는 ‘솔’(松)과 고을을 뜻하는 ‘올’(올은 고을을 뜻하는 골=洞에서 ‘ᄀ’이 떨어져 ‘올’이 되었다)이 합친 말이다. 또 솔올의 다른 지명은 ‘소리(蘇李)골’이라 하는데 그 유래는 이곳에 살던 영해(寧海)이씨인 이오(李傲)가 서기 1600년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서기 1615년에는 그의 장남 상혐은 병과(丙科)에, 차남 상빈은 갑과(甲科)에 장원으로 형제가 동년에 동반급제하니, 이들 삼부자의 문장과 명성을 중국 소노천(蘇老泉)[국 宋나라 문장가 소동파의 부(父), 당송(唐宋) 문장 8대가] 삼부자에 비견하여, 이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을 소노천 삼부자의 소(蘇)자와 이오 삼부자의 이(李)자를 붙여 소리골(蘇李谷)이라 하고 마을 뒷산을 미산(眉山)이라고 불렀다. 또한 조선조에 태종이 이들의 선조 이성무 4형제에게 조선조 최초로 효자 정려와 효행찬시를 지어 하사하고, 세종은 이들의 효행을 도덕 교본인 상강행실도에 수록하여 칭송하니, 문장과 효행에 소리가 나는 마을이라고 하여 소리골(聲谷)이라고도 불렀다. 후일 우리말 발음 소리골이 솔올로 변하였다. -출처 : 임영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