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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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지명 |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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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남항진동 일원 | * 남항진 남대천 하류 남쪽에 있는 포구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남항진리라 하다가 1920년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9월에 강릉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쳤다. 옛날 이 마을은 물건너 북쪽인 견소동에 속해 있던 지역이였으나 남대천 하류에 둑을 쌓고 현 견소동을 "앞에 있는 길목"이란 뜻에서 앞목이라 하고 이곳은 제주에서 한송사, 불하산으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남항진이라 했다. 마을 남쪽에 신라때 화랑들이 심신을 연마하며 공부했던 한송정이 있는데 택리지 산수승지에 보면 "湖南數里許 有寒松亭 有石鼎有石臼之屬 卽四仙遊處"란 귀절이 있다. 이 절은 신라 중기에 창건된 것으로 약 400여년 전에 황폐하여 지금은 작은 암자만 남아있어 옛날의 웅장함을 찾을 수 없고, 국보 제124호로 지정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과 보물 제81호 한송사지 석불좌상이 국립춘천박물관과 오죽헌시립박물관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이 절은 天竺에서 文殊보살과 普賢보살이 돌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지었다고 한다. * 나루터 마을 앞에 있는 나루. 옛날 이곳에 배를 대는 나루가 있었다. |
5 | 병산동 일원 | * 자리미(자루뫼, 柄山) 병산동 마을 전체의 이름. 마을 서쪽 학우리에서 뻗어온 산세가 북두칠성 가운데 맨 끝에 있는 별 모양인 북두자루처럼 생겨 자루뫼(柄山)라 하는데 자리미는 자루뫼가 변한 소리값이다. * 덕정봉(德亭峰) 병산 솔밭에서 서쪽으로 보이는 봉. 괴봉산 남쪽에 있는 산봉우리가 덕이 있는 정자처럼 생겼다. * 괴봉산 하수종말처리장 앞에 있는 봉으로 산줄기가 남북으로 뻗어있는데 산세가 마치 고양이가 뛰는 형체로 되어있다. 남대천 건너 송정마을에서 이곳과 다리를 놓으려 했으나 송정 끝에 쥐형국의 산이 있어서, 다리를 놓으면 고양이가 넘어오게 되고, 그러면 쥐들이 죽어 마을이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여 다리를 놓지 않았다고도 한다. * 팔명산 말산과 자루뫼 경계에 동서로 뻗은 산 * 조강골 병산 솔밭에서 서쪽으로 있는 골. 옛날 강릉 최씨 집안 가운데 택호가 조강인 집이 이곳에서 울리면서 살았다. 원래 조강댁은 현 강릉여자고등학교 부근에 살았는데, 이곳에 남대천 남쪽 말산으로 다니던 다리(말뚝으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를 통해 한송사로 다녔는데 말뚝으로 만든 다리를 조강이라고 한다. 조강이 있는 곳에 살던 사람이 이곳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골 이름이 생긴 것이다. * 냇바닥 우시장 일대. 옛날 이곳이 남대천 하류로 내의 바닥이였다. * 동산재 학우리와 자루뫼 사이에 있는 산으로 학우리 동쪽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 뒷말 자루뫼에서 남항진으로 통하는 도로 중심으로 자루뫼 뒤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뒷꾸미 자루뫼 뒤에 있는 마을. * 샛둘 뒷꾸미와 아랫들 사이에 있는 들 * 아랫둘 샛둘 아래에 있는 들 |
4 | 학동 일원 | * 학우리(南洞) 학동마을 전체의 이름. 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 형국이 학의 둥지처럼 생겨 학우리라 한다. 또 "학울"이라고 하는데 이는 학의 형국에서 학들이 모여 울었다고 한다. 남동이라고 하는 것은 이 마을은 영양 남씨들이 창건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강창골(姜創골) 덕봉사 길 건너 남쪽마을로 학우리와 당골 사이에 있다. 마을회관이 있는 마을로 옛날 이 마을을 진주 강씨들이 창건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당골(棠골) 강창골에서 동쪽에 있는 자루뫼로 넘어가는 골. 이골이 堂花浮地形으로 생겨 해당화가 많이 있다. * 방축골 마을 남쪽으로 흐르는 섬석천 냇물을 중심으로 청량동과 경계지역. 비행장안 아파트가 있는 일대로 섬둘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이곳으로 흘러 둑을 쌓았다. |
3 | 두산동 일원 | * 월대산(月帶山,月正山) 두산동과 입암동 경계지역에 있는 강릉시내에서 가장 높은 산(해발65m)으로 산꼭대기에 적의 침입이나 변란이 있을 때 불이나 연기를 올려 급한 소식을 알리던 봉수대가 있었다. 지금은 "강릉봉수지비"가 있어 유적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있다. 월대산은 태장봉, 증봉, 모산봉과 더불어 강릉 사주산의 하나이며, 봉 서쪽 낙맥에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기를 말살하기 위한 철주를 박았던 바위가 있다. 또 이곳을 월태라고 하는데 이태조 때 송도의 만월태를 생각하여 남현에다 태를 세웠는데 이를 월태라 하고 그 냇가를 滄浪이라 했다. * 말산(馬山,斗山) 월대산 동쪽 마을, 월대산에서 동쪽마을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곡식을 담는 말(斗)처럼 생겼다. 또 산세가 말안장처럼 생겼고 이곳이 갈마음 수형이여서 말산이라고도 한다. * 핸둘(白石洞, 眞石洞) 월대산에서 (구)학동 동사무소 쪽으로 가면서 왼쪽 정류장 일대. 이곳에서 흰돌(차돌)이 많이 나와서 흰돌이 변음이 되어 핸둘이 되었다. * 차돌광 핸둘 안에 있는 차돌광으로 옛날 일본 사람들이 사기를 만들기 위해 이곳에 와서 차돌을 파서 일본으로 가져갔다 * 수령바우 월대산 꼭대기 봉화터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소리개(독수리)처럼 생긴 바위. 바위 가운데 제일 어른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옛날 이 바위에서 치성을 드렸다. * 뒷뜰(斗山坪,後坪) 두산마을 뒤로 남대천 쪽에 있는 넓은 들 |
2 | 청량동 일원 지명유래 | * 청량동 이 마을에 靑梁米(생동쌀)가 잘 되는 큰 들이 있어 청량들이라 하였는데 비행장 확장공사로 많이 줄어 들었다. 마을 앞에는 신석동과 유산동 사이에서 흘러온 섬석천이 흐르고, 내를 경계로 남쪽 넓은 들이 월호평이 된다. 마을에서 월호평으로 가는 다리를 유다리(栗橋)라 하는데, 정월 대보름 때 마을 사람들과 월호평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이 다리를 먼저 밟기 위해 이곳에서 횃불싸움을 했다. 또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부녀자들은 이 다리에서 자기의 나이 숫자만큼 다리를 밟는 다리밟기를 했다. * 석밭골 청량리 마을 입구에서 들어오면서 왼쪽 첫번째 골 * 새우자리 섬둘쪽 철길 부근으로 웅덩이가 새우의 눈처럼 생겼는데 철길때문에 지금은 없어졌다. * 웃모퉁이 강릉과 동해간 국도를 중심으로 위쪽에 있는 마을. * 아랫모퉁이 웃모퉁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 * 자초들(자초아) 아랫 모퉁이 앞에 있는 들로 학우리와 인접한 지역. 마을 앞 섬석천에 보가 있어 물을 가뒀다가 빼내면 가물치, 메기 등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옛날 이곳에 자초가 많이 있었다. * 유다리(栗다리) 자초들 앞 섬석천에 있는 다리로 마을에서 내 남쪽 월호평들로 가는 길에 있다. 이 다리는 수명이 백 년 이상이고 단단한 밤나무로 만들어져 율다리라 한다. 1969년에 콘크리트로 재가설 되었다가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로 유실되어 재가설 중이다. 옛날 "유다리"란 이름이 유리로 만든 "유리다리"로 소문이 나서 외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 해남방축 자초들 너머로 학우리와 경계지역에 있는 방축. 물 남쪽에 있는 방축이란 뜻이다. 옛날 이곳에 소가 있었는데 이 소 위에는 샘이 있어서 물이 마르지 않았고, 이곳에서 뱃놀이도 했다. |
1 | 입암동 일원 지명유래 | * 입암동(笠岩洞) 마을 뒤에 삿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입암동이라 하고, 동쪽은 두산동, 월호평동, 서쪽은 노암동, 남쪽은 월호평동, 신석동,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다. * 갓바우(삿갓바우,笠岩) 양짓말 위쪽으로 왜지에서 방축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바위로 바위의 생김새가 삿갓처럼 생겼 는데 이 바위 때문에 동네의 이름이 생겼다. * 갓바우골 갓바우가 있는 골 * 방축골 강릉중앙고 뒤 넓은 들로 옛날 이곳에 물이 넘쳐서 축대를 쌓았다 * 왜지 강릉중앙고 뒤 방축의 넓은 들. 예부터 이곳에 오얏(자두, 배)이 많이 났는데 오얏, 오야지>외지> 왜지로 음이 변형되었다. 또 외진골이라 "동네와 떨어진 곳"이란 뜻도 된다. * 양짓말 왜지에서 남쪽 양지쪽에 있는 마을. * 부기촌(富起村) 노암우체국에서 강릉중학교로 들어가면서 오른쪽 마을. 옛날 이곳이 논이었는데 그후 엄부일 이란 사람이 개인 힘으로 논을 메워 마을을 만들면서 부를 일으키는 신흥마을이란 뜻에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 용소(龍沼) 강릉중학교 앞 옛 과수원 자리(지금은 입암1주공아파트)에 있던 소. 옛날 남대천에 뚝이 없었을 때 이 곳으로 물이 굽이치며 흘렀는데 이곳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 갔다고 한다. * 범정골(범진골) 방축 제일 안쪽에 있는 골로 이골을 넘으면 청량동이 된다. 옛날 이곳에 민가가 없고 바위만 있었는데 바위에 사람이 올라가 노니 범이 나타나 그 바위 위에 노는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바위 밑에 있는 소에 빠져 죽어 "범이 죽은 골"이란 뜻이다. * 서증골(徐俊골, 쇠중골) 10통5반의 소지명. 옛날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부호이면서 인물이 준수한데, 이 사람이 이골 에서 울리면서 살았다고 하여 "준수한 서씨가 산 마을"이란 뜻에서 서준골이라고도 하고 또, 이 골에서 소가 죽어 "소 죽은 골"이 변해 쇠중골이 되었고, 또 서씨와 정씨가 이 골에 많이 살아 서씨와 정씨의 성을 따서 서정골이 서증골로 되었다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