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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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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소개 > 일반현황 > 읍면동 지명유래 목록 - 번호, 지명, 유래 정보 제공
번호 지명 유래
9 넘말 마을앞에 있는 마을로 현1,2,8통 지역이다
8 굼논가 현 송정동8통 지역으로 지대가 낮은 논 주변이라는 뜻이다
7 솟대거리 젠주뜰 가운데 있는 곳 서낭당 앞에 솟대를 하나 세워 놓았는데 옛날 하(佛) 下山에서 정기가 뻗쳐 불이 자주 났기 때문에 이곳에 솟대를 세워놓고 불을 예방했다고 함
6 하평 -
5 견 소 (見召) 남대천 하류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본다는 뜻
4 해당팥 송정제방 밑으로 옛날 이곳엔 해당화가 많이 자랐음
3 영채(영채.영처) 동명초교 뒤뜰 옛날부터 이곳이 비옥하여 채소를 많이 심었다고 함
2 죽도봉 마을 아래 끝부분에 있는 높은 봉, 남대천 하류에 있는 봉 죽도봉이라 하는 뜻은 옛날에 이 봉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또 마을 사람들은 젠주峰이라 하는데 이 봉은 원래 전라북도 도청소재지인 전주에서 떠내려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생긴 이름인데 매년 전주 사람이 이곳에 와서 도지를 받아 갔다고 한다. 젠주의 염전은 강릉의 三奇 가운데 하나다. 옛날 남대천에 제방이 없을 때 바닷물이 파도에 밀려 이곳에 들어오면 염전 가운데 특이한 염전이다. 그래서 강릉 향언에 모든일이 자연스럽게 잘 될때를 가르켜 "젠주 염전되듯"이라고한다.
1 송정, 견소 송정(松亭)은 팔송정(八松亭)에서 따온 말이다
팔송정(八松亭)은 여덟 그루의 소나무가 정자(亭子)를 이루었다하여 붙인 이름
으로 고려말(高麗末) 부마도위였던 최문한(崔汶漢) 公 ( 江陵 東原 崔氏 始祖)의 부인 숙명공주(淑明公主)가 송도(松都)에서 江陵으로 올 때 여덟그루의 소나무를 가지고 와서 이곳에 심었다 한다. 이곳이 임진왜란때 전혀 피해가 없었던 것은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朝鮮)에 가면 「松」字가 들어간 마을을 조심하라는 도참 설(圖讖設)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 견소동(見召洞) 「젠주」마을은 임진왜란때 이곳에 맨 먼저 진주한 일본군 부대 장의 이름을 따서 일본 사람들이 안목(安木)이라 개칭했다가 죽도봉이 전북 전주 (全北 全州)에서 온 사람의 소유라 하여 전주 또는 「젠주」라 한다는 것,
또 하나의 설은 산봉우리가 전주(全州)에서 떠 내려와 이곳에 있으므로서 그리 부른다 하며 전주(全州) 사람이 매년 도지를 받아 갔다고 한다.
- 또한 안목(安木)이라는 지명은 당시 주변지역에서 벌채한 나무를 배로 운송하기 위해 이곳에 잠시 적치 하였다가 반출 하였는바 나무가 편히 쉬었다가 운반된 장소라 하여 안목(安木)이라는 설도 있다.
- 이렇게 지명 유래에서 알수 있듯이 송정은 고려말(高麗末)부터 불러졌고, 견소는 (見召)「젠주」마을인데 언제부터 불리어 졌는지 분명치 않으며 안목(安木은 임진 왜란때 부터인 것을 알수 있다.
- 이 두 마을이 송정(松亭), 젠주라 불리기 이전(고려, 신라, 고구려, 임둔, 창해 등)
에는 무엇이였는지 찾지 못함을 매우 섭섭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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