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정보
소개
호해정(湖海亭)은 경포호의 북쪽 언덕위에 있는 정자로 1950년초 진사 신정복(辛正復)이 건립한 것이다. 이 자리는 원래 장호(張昊)가 그의 호를 따 지은 태허정(太虛亭)이 있던 자리로 이 터를 조카사위 김몽호(金夢虎)에게 물려주었던 곳이라 한다.
그 후 김몽호는 그의 아들 득헌(得憲)에게 득헌은 다시 그의 사위 신만(辛晩)에게 양도 하였다. 신만의 아들 성하(聖河)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을 위하여 이 곳에 조그만 초옥(草屋)을 짓고 이 곳에 선생을 거처하게 하였으며 성하의 손자 정복은 삼연선생의 옛일을 생각하여 제자를 모아 강의하던 중 실화(失火)로 타버리자 조상의 숨결이 서린 이곳을 태워버린 것을 민망히 여겨 강릉시 죽헌동에 있던 자기집 별당인 안포당을 헐어 이 곳에 옮겨 짓고 '호해정'이라 불렀다.
별당을 헐어 옮겨 지은 정자인 이 건물은 경포호수 동북쪽 깊숙한 산기슭에 자리잡아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경관을 엿보게 한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의 세 기둥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각기둥이며 약간의 배흘림을 보이고 있다.
이익공의 모습이 유려하며, 분합문과 벽체의 구성이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온돌방과 마루방을 두었고, 방사이에는 분합문을 두어 필요시 한 방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1800년초에 김몽호의 후손이 신씨로부터 이 정자를 인도 받아 관리하고 김몽호의 영정(影幀)을 이곳에 봉안하고 매년 음력9월 중정(中丁)에 다례(茶禮)를 올리고 있다.
이 곳에는 옥산(玉山) 이우(李瑀)와 삼연 김창흡의 시가 있고 민우수(閔愚洙)외 3명의 기문이 있으며 현액은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