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정보
소개
낭원대사는 속성이 김씨이고 휘(諱 - 죽은 사람의 이름)는 개청(開淸)이며 진한 계림인(辰韓 鷄林人)으로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법통을 이어받아 보현사에서 수도하다가 고려 태조 13년(930)에 96세로 입적(入寂)하자 태조는 그에게 낭원(朗圓)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비호(碑號)를 오진(悟眞)이라 하였다.
이 비석의 거북모양 받침돌은 네모난 지대석(地臺石 - 기초부에 까는 받침돌) 위에 놓여있다. 거북의 머리는 용의 모습처럼 만들었고, 등에는 6각의 거북 등 무늬를 새겼고, 구름무늬로 장식한 비몸자리가 있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높은 비좌(碑座 - 비를 꽂아두는 부분)가 마련되어 있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석탑에서처럼 복발(覆鉢 - 탑의 위쪽에 주발같이 엎어놓은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 - 바퀴모양의 장식)을 갖추고, 화염에 싸인 보주(寶珠 -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고 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이 비는 최언위(崔彦僞)가 지었으며 해동금석총목에 오른 명필인 구족달(仇足達)이 비문을 썼으며 크기와 수법에 있어서 영동지방에서 가장 뛰어난 비석으로 평가되고 있다.